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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 Landau, 오스카 수상작 '타이타닉'과 '아바타' 프로듀서, 63세에서 별세

로스앤젤레스(AP) -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긴밀히 협력한 오스카 수상작 프로듀서 존 랜더가 '타이타닉' 및 '아바타' 두 작품의 총통행 시기 중 죽었다. 그는 63세였다.

랜더의 가족은 토요일 그의 사망을 발표했다.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랜더의 카메론과의 파트너십은 3회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이어 1997년 '타이타닉'의 최우수 작품상 시상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아바타'와 그 후속작 '아바타: 물의 길'을 비롯한 영화 역사상 가장 큰 흥행작의 일부를 차지한다.

카메론은 성명에서 '31년 오랜 친구이자 가장 가까운 협력자'인 랜더를 기억했다. 카메론은 '나 자신의 일부가 떼어졌다'고 말했다.

'그의 미친 유머, 개인적인 자력, 대단히 풍부한 정신적인 관대함과 강한 의지는 거의 2년간 우리의 아바타 세계의 중심을 차지해 왔다.'라고 카메론은 말했다. '그의 유산은 그가 제작한 영화뿐만 아니라, 인내력, 배려심, 포괄적인 태도, 끈질긴 노력, 통찰력 그리고 스스로에게만 있는 유일함' 입니다."

랜더의 경력은 1980년대에 생산 매니저로 시작되어 조금씩 승진해 가다가 '허니 아이 슈링크 더 키즈'와 '딕 트레이시'의 공동 프로듀서로 섭렵했다.

그는 '타이타닉'에서 프로듀서 역할을 맡았으며, 이는 1912년 해상 재앙에 대한 카메론 감독의 비싼 대작이었다. 이러한 베팅은 성공했다. '타이타닉'은 글로벌 박스 오피스 수입이 10억 달러를 돌파한 최초의 영화가 되었으며, 최고작품상을 비롯한 11회 아카데미 수상을 했다.

'나는 연기하거나 작곡하거나 시각 효과를 만들 수 없으므로, 아마도 그게 제가 제작자인 이유인 것 같습니다.' 랜더가 카메론과 함께 시상자로서 말했다.

1998년 '타이타닉'의 최우수 작품상과 함께 오스카를 수여받은 카메론과 랜더. (AP 사진/리드 색슨)

그들의 파트너십은 계속되었고, 랜더는 카메론의 라이트스톰 엔터테인먼트에서 최고 임원이 되었다. 2009년에는 카메론의 자유로운 과학소설로 필름화되어 홍보되고 신기술로 제작, 상영된 '아바타'가 '타이타닉'의 박스 오피스 흥행을 넘어섰다. 이는 언제든지 최고 흥행 영화로 남아 있다.

그의 후속작 '아바타: 물의 길'은 목록에서 세 번째다.

'당신의 지혜와 지지로 우리는 땀 흘릴 것이고 나중에 항상 고마워할 것이다.' '아바타' 시리즈의 주연 중 한 명인 조 스프다는 인스타그램에서 감동적인 조문을 전했다. '당신의 유산은 우리를 영원히 영감을 주고 우리의 여행을 이끌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랜더는 '아바타' 시리즈에서 핵심 인물이었으며, '물의 길'의 출시가 자주 지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진행 상황을 지지하고 카메론 감독이 시리즈를 계속하기 위해 여러 후속작을 한꺼번에 필름화하는 야심 찬 계획을 방어했다.

랜더는 2022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것이 변했지만 많은 것이 그대로입니다.'라며 '오늘날 사람들이 왜 엔터테인먼트에 의지하는가? 처음 '아바타'가 발표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합니다.'라고 말했다.

'조는 환상적인 훈장과 열정으로 인해 화면의 가장 잊지 못할 이야기들을 살아 있게 만든 비전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영화 산업에 대한 현저한 기여는 뚜렷한 흔적을 남겼으며, 그는 극도로 긍정적이고 진정한 자연의 힘을 가진 사람이자 우리 주변 모두를 영감을 주는 힘이 되었다.' 디즈니 엔터테인먼트 공동 의장 앨런 버그먼은 성명에서 말했다.

랜더는 29세 때 20세기 폭스의 장편 영화 부사장으로 선정되었고, '홈 얼론', 그의 후속작 '뷰 드트파이어', '미세스 다우브파이어'와 '트루 라이즈'와 같이 주요 흥행 작품을 감독했다.

2019년 서울에서 '알리타: 배틀 엔젤'을 홍보하기 위한 공동기자회견에서 로드리게스, 배우 로사 살라자르 및 랜더. (AP 사진/안 영준)

랜더는 또한 2019년에 만화를 영화 관객들에게 선보인 '알리타: 배틀 엔젤'을 화려한 영화로 전환하는 데 영향력이 있었다. 카메론은 프로젝트를 지원했지만 '아바타'의 의무로 인해 그것을 감독할 시간이 없었다. 대신, 랜더는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스와 협력하여 영화를 완성시켰다.

1960년 7월 23일 뉴욕에서 태어난 랜더는 영화제작자 일리와 에디 랜더의 아들이었다. 가족은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로 이사를 갔으며, 랜더는 남침 대학의 영화학교를 졸업했다.

일리 랜도는 1993년에 사망했다. '롱 데이즈 저니 인투 나잇', '홉스컷치' 및 '더 데들리 게임'과 같은 영화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에디 랜드는 2022년에 사망했다.

존 랜더는 약 40년 동안의 부인 줄리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그들의 아들 재미와 조디, 그리고 두 명의 자매와 한 명의 형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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